메뉴 검색
메뉴 닫기
‹섬진강포럼› 윤석열에게 기대했던 윤석열다움이 없다 2022-05-10 16:06:00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비서진에 둘러싸여 1호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임제의현(臨濟義玄: ?~867) 선사(禪師)가 깨달음을 갈구하며 헤매는 선객(禪客)들을 살리고 깨우치는 가르침의 방편으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스승)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를 세상에 전한 이후....


대대로 수많은 승려들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죽인 것은 물론 안과 밖으로 만나는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그 자리에 비할 데 없이 화려한 법당으로 자신을 세웠으면서도, 정작 자신 하나도 구하지 못하고 미망에 빠져서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가 돼버렸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는 살불살조의 전제 조건은, 진정한 부처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는 것이고, 깨달음의 완성은 그 만난 부처와 스승을 뛰어넘는 것인데, 결론은 진정한 부처와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해봐야 할 것은, 비수를 들고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죽이는 수행승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그들의 살불살조가 이른바 망상에서 휘두르는 칼춤임을 모르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는 우매한 군상들이다.(알기 쉽게 설명하면 돈키호테와 풍차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해서 가끔 아주 가끔 촌부를 찾아와 묻는 인연이 있는 이들에게 일러주는 말은, 살불살조의 전제 조건인 진정한 부처와 스승을 찾아 헤매는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즉 그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내고 있는 허상에서 벗어나 눈앞의 실상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를 들어 그 고을의 인심과 이어지는 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고을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존귀한 사람이 아니고, 그 고을에서 얻어먹고 사는 거지이므로, 현명한 나그네는 거지에게 길을 묻는 이치를 안다면, 눈앞의 실상을 직시하라는 촌부의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드시 잊지 말라고 일러주는 것은, 진실로 바라고 원하던 부처와 스승을 만나 살불살조(殺佛殺祖)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살오(殺吾) 그러는 너를 죽여라, 즉 부처와 스승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반드시 죽이라고 그것도 확실하게 죽이라고 그러면 알 것이라고 일러주는데, 스스로를 확실하게 죽이는 살오(殺吾)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처와 스승을 만나 그들을 죽이는 일보다 천 배 만 배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이걸 쉽게 설명하면, 며칠 전 지난 5일 게재한 “구례읍 카페 “허밍”에서 본 실상, 누구처럼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 제하의 글에서 언급한 화가 “폴 고갱(1850-1903년)의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는 고귀한 깨달음의 전제 조건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며 버렸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폴 고갱 자신마저도 확실하게 버리고나서 비로소 얻은 깨달음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청력을 상실한 악성(樂聖) 베토벤이 최후에 완성한 불멸의 교향곡 9번 합창 역시 들을 수 없는 귀로, 들리지 않는 곡을 완성한 것인데, 이는 베토벤 자신이 음악의 인생에서 뛰어넘고 싶은 대상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존재를 뛰어넘은 베토벤 자신마저도 넘어섰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베토벤이 음악가의 생명인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인 청력을 상실했기에, 비로소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울리는 소리 즉 진정한 자연의 소리 이른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표현할 수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력을 상실한 후 인류를 위한 걸작 교향곡 9번 합창을 완성한 베토벤이나,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는 화가 “폴 고갱”이 명작을 남긴 그 철학적 사고와 삶의 정신은, “누구처럼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라는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욕구에서 시작하여, 비로소 베토벤은 베토벤다움으로, 고갱은 고갱다움으로 자신들의 삶을 완성한 것이다.


어제 5월 9일 24시를 끝으로 저 사악한 내로남불의 대통령 문재인이 분탕질을 벌인 5년이 끝나고, 오늘 5월 10일 0시를 시작으로 윤석열이 벼르고 있는 5년이 시작되었는데, 떠나간 문재인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깨달지 못하고 있는, 새로이 시작하는 윤석열이 참 안타깝기만 하다.


0시를 기하여 상식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보신각종을 33번을 치고 시작하는 대통령 윤석열이 내세운, 총리를 비롯한 부도덕한 장관 후보들을 보면, 이게 정말 우리 국민들이 지지했던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인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인지 심히 의문이다.


이미 첫 선을 보인 총리 지명자 한덕수를 비롯하여, 청문회에 회부된 장관 후보자들과, 원내대표 권성동이 벌이고 있는 희대의 원맨쇼를 보면, 윤석열 정권 자체가 지긋지긋한 내로남불의 문재인처럼만 있을 뿐, 국민들이 기대했던 윤석열다움은 눈곱만큼도 없기에 하는 말이다.


시작부터 지지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철저히 무시하며 저버리고 있는, 잘못된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의 인선으로, 역사상 가장 위선적이고 온갖 부정부패로 점철된 추악한 내로남불의 문재인과 한국의 이멜다인 문재인의 처 김정숙을 성공한 대통령과 훌륭한 부인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윤석열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실망과 절망을 넘어서 정말로 어리석다는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 시작하는 윤석열 정권이 내로남불의 문재인처럼이 아닌 윤석열답게 윤석열다운 정치와 인선으로 윤석열 정권의 슬로건인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답게, 대한민국이 대한민국답고, 정치가 정치다운 나라, 그리하여 모든 국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바라는 뜻을 이루며 사는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대통령 윤석열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르네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일국의 정치지도자 그것도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대통령다움은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러기를 바란다.


“누구처럼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를 바라며, 날마다 하루를 살고 있는, 지리산 구례읍 오거리 카페 “허밍”의 여주인처럼, 대통령 윤석열답게 대통령 윤석열다움을 추구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런 마음으로 5년의 정치를 하여 준다면, 그것으로 윤석열의 정치는 성공할 것이고, 대한민국은 미래로 진일보하여 나갈 것이며, 국민들은 윤석열을 사랑하며 지지할 것이고, 역사는 윤석열을 훌륭한 정치지도자로 기록할 것이니, 부디 윤석열다움이 뭔지를 고민하고 깨달아 실천하는 대통령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식 행사를 마친 뒤 용산집무실로 가면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과천 여성 비전센터

스토리&토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