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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등반 도중 눈폭풍에 휘말려 사망한 김창호 원정대장은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등로주의(登路主義) 산악인이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코리안 웨이(korean way )를 개척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는 해발 0m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르는 '제로 투 서밋' 등정을 했으며 세계 최초 등정 3회와 새 루트 개척 8회의 신기록을 세웠다.

1996년 가셔브룸 4봉 7925m 동벽 새 루트를 등반하고 2001년 카라코람 카체브랑사 5560m를 세계 최초 등정했다. 카라코람 혼보로피크 5500m와 힌드쿠시 시카리 5928m 새 루트를 등반했다. 2004년 로체 8516m 남벽 새 루트를 등반했으며 2005년 낭가파르바트 8125m 루팔벽을 메스너 이후 35년 만에 등정했다. 2008년 바투라 2봉 7762m를 세계 최초 등정했으며 2012년 힘중 7140m를 세계 최초 등정했다. 2013년에 에베레스트 8848m를 올랐으며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을 해 국내 최초 세계 14번째 역대 최단 기간 등정 기록을 세웠다. 2014년엔 원코리아 유라시아 자전거 원정 대장으로 9개국 1만5000km를 달렸다. 2016년 아샤푸르나 7140m와 강가푸르나 7455m의 새 루트를 개척했다. 2017년 다람수라 6446m와 팝수 7451m의 새 루트를 개척했다. 2018년 구루자히말의 신루트를 개척하던 도중에 눈사태에 휘말려 사망했다. 

김 대장과 유영직 51세 장비담당, 이재훈 24세 식량의료 담당, 임일진 49세 다큐 영화 촬영감독, 정준모 54세 한국산악회 이사 5명과 네팔인 4명이 함께 사망했다. 1970년 이후 48년 동안 히말라야 원정 도중 사망 한국인은 90여명에 이른다. 

김창호 대장은1969년 경북 예천에서 출생했으며 서울시립대에 입학하여 우연히 산악부에 들어가 산 사나이가 되었다. 그는 서울시립대 산악부 4년 후배와 결혼해 세 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 





김창호 대장이 생사의 한계선을 넘어야 하는 등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천신만고의 설산 등반을 통해 정상에 도달하면 그곳에서 권력과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 대장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 내 길이다''는 신념을 가지고 신루트를 개척하는 극한의 도전에 몸을 던졌다. 그도 평소에는 원정대원들에게 무사히 등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등반의 성공이라는 강조를 했으며 ''from home to home''을 모토로 삼았다고 한다.

사는 집과 일터를 시계추와 같이 왔다갔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 김 대장의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위험한 산을 왜 자꾸 오르려고 했습니까?'' 라고 물으면 김 대장님은 뭐라고 할까? 소이부답 심자한(笑而不答 心自閒)일까?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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