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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큰 별 최은희 연인 신상옥이 간 4월에 따라가다 -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
  • 기사등록 2018-04-17 12:27:54
  • 기사수정 2018-04-17 14: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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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큰 별 최은희가 16일 졌다. 향년 92세.남편 신상옥 전 영화감독도 2016년 4월(11일)에 이 곳을 떠났다. 최은희는 신상옥 곁으로 갔을까.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빈소가 차려졌다. 영화 같은 삶을 살며 한국영화사의 큰 별이었지만, 조문객이 많지는 않았다. 원로 영화인 몇 명이 자리를 지키며 고인에 대해 회상했다.

▲ 원로 배우 故 최은희(향년 92세) 빈소 사진= 뉴데일리

배우 한지일은 “최은희 선생님이 ‘항상 겸손하라’고 하셨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지일은 1971년 명동 길거리에서 고인의 남편인 고(故) 신상옥 감독에게 캐스팅돼 영화계에 출연했고, 고인이 교장으로 있던 안양영화예술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한지일은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최은희 선생님에게 연기를 배웠다. 17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연극 공연을 하러 오셨을 때 만나 함흥냉면을 사주셨는데, 그 후로 찾아뵙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 영화 같은 삶을 산 최은희 사진= 스타 인


배우 엄앵란도 최은희 별세 소식에 "길이 기념해야 할 배우"라고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이종덕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좌교수가 자리를 함께 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06년 신상옥 감독 별세 이후 안양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해마다 추모사를 했다.
김동호 전 위원장은 “작년까지는 최은희 선생님을 모시고 추모행사를 했는데 올해는 참석하지 못하셨다”며 “연말에 찾아뵀고 정초에는 직접 안부 전화를 주셨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고인에 대해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중요한 한국영화에 거의 모두 출연했고, 당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며 “신상옥과 최은희 두 분의 기념관을 짓는 게 평생 소원이셨는데 그걸 못보고 가셔서 한이 된다”고 했다.

고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의 아들인 영화감독 신정균은 17일 "영화인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영화계 의견이 많았지만, 어머님의 생전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최은희, 신상옥 부부의 다정한 모습


최은희는 신상옥 감독과 이혼하고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다. 신상옥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기록돼 있다.


▲ 젊은 시절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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