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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우드의 전설, 커크 더글러스는 최고 스타이며 자선가였다 - [이동한의 세상읽기] 더글러스의 타계에 부쳐
  • 기사등록 2020-02-07 08: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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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우드의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5일(현지시간) 10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의 CNN과 뉴욕타임스 등이 스타 배우의 타계 소식을 보도했다. 

더글러스는 미국의 유명 배우이면서 영화감독이며 영화 프로듀서였다. 


아들인 마이클 더글러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매우 슬프지만 커크 더글러스가 103세 나이에 우리들 곁을 떠났다. 그는 전 세계에 전설이며 영화 산업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배우였다. 그는 인도주의를 실천하여 정의를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나와 내 형제들인 조엘리 피터에게는 단순한 한 가정의 아버지였고, 캐서린에게는 시아버지, 손주들에게는 할아버지, 아내인 앤에게는 훌륭한 남편이였다" 는 애도의 글을 올렸다.


이어서 "아버지는 훌륭한 삶을 살았고 앞으로 여러 세대로 이어질 유산을 남겼다. 그는 지구의 평화를 가져다 준 유명한 자선가로 역사에 기록됐다"고 했다. 




더글러스는 1916년 미국 뉴욕의 엠스터댐의 가난한 유대계 아들로 태어났다.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에 진학하여 배우의 꿈을 키웠다. 


1946년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1949년 영화 '챔피언'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에 '열정의 랩소디', '해저 2만리' '야목장의 결투', '스파르타쿠스' 등 영화에 출연하여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영화계에서 약 70년간 활동하면서 9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1991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와 1999년 미국 영화배우 조합(SAG)에서 각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19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아들인 마이클이 시상자로 나선 무대에서 명예상을 받았다. 1950년에 미국에서 매카시즘 광풍이 불 때에 공산주의에 연루된 의혹으로 할리우드에서 배척된 영화인을 일터로 복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1년 뉴욕타임스에 보낸 서한에서 그는 당시 블랙리스트에 대항해 자신의 친구 트럼 보의 복직을 위해 지원한 일이 인생의 가장 자랑스러운 선택 중 하나라고 밝혔다. 

더글러스는 세계 분쟁지역에 학교와 공원을 세우는 등 자선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1991년 헬기 사고로 척추 수술을 받았고 1995년 뇌졸중으로 언어 장애를 겪으면서도 장수를 했다. 


1943년 배우 다이애나 웹스터와 결혼했다가 1951년에 이혼을 했으며 1954년에 3살 연하의 앤 바이든스과 결혼해 60년 해로를 했다.



 더글러스가 열연하는 영화 스파르타쿠스는 고대 로마시대 광산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노예인 스파르타쿠스가 노예상인에 팔려가 검투사 교육을 받는다. 그곳에서 노예 여인 바리니아를 사랑하게 된다. 죽음의 대결을 하는 검투장에서 검투교관을 죽이고 노예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로마군에 의해 체포되어 십자가형으로 처형된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죽는 것을 보고 아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간다. 


영화는 깊은 여운의 감동을 준다. 더글러스는 갔지만 그가 영화를 통해 남긴 감동은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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